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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약] 미세플라스틱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우리는 플라스틱 세상에 살고 있다.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는다. 작은 조각들로 쪼개질 뿐이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쪼개진 플라스틱 입자를 사람의 폐, 간, 태반, 모유, 혈액에서 발견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의 몸속에 들어온 미세플라스틱은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가? 이들이 심장에 해로울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이탈리아 연구 결과가 2024년 3월 7일 저명한 학술지(NEJM)에 발표됐다.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에 콜레스테롤과 지방이 쌓이면 혈관이 좁아진다. 이로 인해 혈액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수술로 침전물 덩어리(플라크)를 제거해야 한다. 연구팀은 이렇게 제거한 덩어리에서 미세플라스틱, 그보다 더 작은 나노플라스틱이 발견된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환자들을 비교했다. 수술 뒤 34개월 동안 뇌졸중, 심근경색, 사망위험에서 미세플라스틱 유무에 따라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지켜봤다. 그 결과 미세플라스틱이 혈관 플라크에서 발견된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졸중, 심근경색, 사망 위험이 무려 4.5배로 높게 나타났다. 미세플라스틱이 혈관 안쪽에 쌓이면 염증을 유발하여 뇌졸중과 심근경색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추측이다.   미세플라스틱이 해로울 거라는 우려가 크지만,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질환 위험과 미세플라스틱 사이의 관계를 조명한 연구는 많지 않다. 2022년 중국 연구에서 건강한 사람보다 염증성 장 질환 환자의 대변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더 많이 발견되었지만 이는 단순히 상관관계만을 보여줬다. 이번 연구도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위험이 4.5배에 이를 정도로 커다란 차이가 3년 이내에 나타났으니 인과성이 있을 거 같긴 하다. 하지만 다른 변수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플라스틱이 발견된 환자들이 심장 질환, 당뇨병, 고지혈증도 더 많았고 남성이며 흡연자인 경우가 많았다. 비교 대상이 총 257명으로 소규모 연구라는 한계도 있다. 연구자들도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어떻게 하면 미세플라스틱을 적게 먹을 것인가. 덩치가 큰 육식성 어종, 바닷물을 여과해서 먹이를 먹는 패류를 적게 먹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물 마실 때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 양이 제일 많다. 마시고 버린 생수병이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언젠가는 쪼개져 다시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세계에서 지금껏 생산한 플라스틱의 절반은 2000년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생산된 플라스틱의 고작 9%가 재활용된다. 한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40%에 달한다. 지구상의 누구도 플라스틱을 삼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유이다. 미세플라스틱과 건강에 대한 연구는 과학자들에게 맡기더라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는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미세플라스틱 미세플라스틱 유무 미세플라스틱 사이 결과 미세플라스틱

2024-04-24

[음식과 약] ‘애사비’ 다이어트 효과 있을까

‘애사비’ 다이어트가 다시 유행이다. 애플사이다비니거는 사과술(애플 사이다)을 발효시켜 만든 식초다. 사과즙을 효모 발효시키면 알코올이 생긴다. 알코올을 다시 초산균으로 발효시키면 식초가 만들어진다.   사과 사이다 식초를 이용한 다이어트는 2000년대에도 인기를 끈 적이 있다. 2005년에는 식초를 빵과 함께 먹으면 식후 혈당과 인슐린이 더 천천히 상승한다는 스웨덴 연구결과가 나왔다. 2009년 일본 연구에서는 155명의 성인 참가자들이 12주 동안 매일 15㎖ 또는 30㎖의 사과 사이다 식초를 마셨더니 플라세보 그룹과 비교하여 체중이 1~2㎏ 줄었다. 그런데 지난 3월에 레바논 연구 결과는 이보다 훨씬 효과가 크게 나왔다. 사과 사이다 식초를 마신 참가자의 체중이 위약으로 사용한 젖산 용액을 마신 사람과 비교하여 6~8㎏ 줄었다.   여기서 짚어야 할 점이 있다. 결과가 너무 좋을 때는 의심해봐야 한다는 거다. 레바논 연구에서는 일본 연구보다 더 적은 양의 식초(5, 10 또는 15㎖)를 줬다. 식초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지만, 젖산 용액은 시큼한 냄새가 덜하므로 참가자들이 식초를 받았는지 젖산 용액을 받았는지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참가자의 나이도 12~25세로 젊은 편인 데다가 이들의 식사와 운동에 대해서도 별다른 제한이 없었다. 애사비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인해 체중 감량에 차이가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이번 연구결과의 신빙성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가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이다. 이번 레바논 연구를 믿고 3개월 동안 사과 사이다 식초를 마신다고 해서 8㎏을 감량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이야기다.   물론 애플사이다비니거에 약간의 유익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식초 자체의 효과일 뿐이다. 식초를 전분질 음식과 함께 먹으면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식초의 주성분인 초산(아세트산)이 전분 소화 효소를 억제하거나 위에서 장으로 음식이 천천히 내려가도록 만들기 때문일 수 있다. 조금이라도 효과를 보려면 전분질 음식이 위에 도달하기 전에 식초가 위에 함께 들어 있도록 식사 직전에 식초를 섭취해야 한다. 단, 식초를 그대로 마시면 안 된다. 식초는 산성 물질이어서 치아를 부식시킬 수도 있고 마시다가 기도로 들어가도 위험하다.   실제로 식사 직전에 물 한 컵에 식초 15㎖를 물에 타서 마시고 빵이나 밥을 먹어보면 포만감이 더 오래가는 느낌이 든다. 거꾸로 보면 소화가 안 되어서 불편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식사량이 줄면 체중이 조금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마법 같은 다이어트 효과는 아니다. 애사비 다이어트가 잊을 만 하면 다시 유행한다는 건 그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행 다이어트를 따라 하기 보다는 평생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식사법을 찾는 게 지혜로운 일이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다이어트 애사비 애사비 다이어트 유행 다이어트 다이어트 효과

2024-04-14

[음식과 약] 아침에 먹지 말라는 음식의 진실

아침에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은 없다. 바나나를 아침 공복에 먹으면 마그네슘과 칼륨이 혈액 속으로 들어와서 균형 상태가 깨진다고 한다. 틀린 말이다. 바나나 1개에 300㎎으로 칼륨이 풍부한 건 맞다. 마그네슘은 바나나 1개에 30㎎ 정도로 칼륨보다는 적게 들어있다. 하지만 공복에 바나나를 먹는 정도로 인체의 전해질 균형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다.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으로 보면 칼륨의 하루 충분섭취량은 3500㎎이다. 아침에 바나나 1개를 먹어도 하루 칼륨 섭취량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신장 기능에 문제가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 체내 전해질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 당연히 아침 공복에 바나나를 먹어도 된다.   빈속에 우유를 마시면 칼슘과 카제인이 위산 분비를 촉진해 좋지 않다고 한다. 고구마, 귤, 토마토, 커피도 같은 이유로 먹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음식은 위산 분비를 촉진한다. 우유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음료는 위산 분비를 더 자극한다. 음식이 식도를 통해 위로 들어왔는데 위산을 분비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우유 속 유당(젖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빈속에 우유를 마시고 배에 가스가 차거나 아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단백질과 같은 영양소가 체내에 덜 흡수되지는 않는다. 대개 유당불내증이 있어도 한 번에 5g, 우유로 반 잔(100㎖)까지는 별문제가 없다. 다른 음식과 함께 먹을 경우는 희석되기 때문에 유당을 더 먹어도 괜찮을 수 있다. 하루 유당 12g, 우유로 큰 컵 한잔까지는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대다수다.   게다가 이렇게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이 우유를 마시면 2형 당뇨병 위험이 줄어드는 추가적 유익을 누릴 가능성이 있다. 2024년 1월에 학술지 네이처 메타볼리즘에 실린 연구로 영국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히스패닉 1만2653명을 대상으로 6년 동안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유당불내증이 있어도 우유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체질량지수(BMI)가 낮고, 2형 당뇨 위험이 3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유 소화에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는 우유 섭취량과 당뇨병 위험 감소에 연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이 연구 결과만 가지고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에게 유당이 오히려 장내 비피도박테리아 같은 유익균을 늘리고 단쇄지방산이 더 많이 생기도록 하여 식욕, 인슐린 분비, 간의 지방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는 게 연구진의 추측이다. 쉽게 말해 유당불내증인 사람이 적당량의 우유를 마시면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은 유당이 대장에서 유익균의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잡식 동물인 인간에게는 편식보다 골고루 먹는 게 건강에 좋은 전략이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음식 진실 우유 섭취량 우유 소화 위산 분비

2024-02-29

[음식과 약] 튀김을 사 먹는 게 나은 이유

집에서 튀김을 만들고 나면 남는 기름이 문제다. 한 번 쓰고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그렇다면 튀김 기름을 몇 번까지 재사용할 수 있을까? 답은 조건에 따라 다르다. 튀김을 할 때 온도, 튀김옷을 입히는 방식 또는 튀김 재료, 튀김기 사용 여부 등에 따라 3~4번이 될 수도 있고 7~8번이 될 수도 있다. 2010년 서울대 연구 결과 가정에서 튀김을 만들 때 3일 간격으로 세 번까지 사용하여도 큰 문제가 없었다. 튀김에 세 번 사용한 기름을 10일까지 저장해도 산가 및 과산화물 수치가 기준치보다 낮고, 관능검사에서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튀김 기름을 여과하든, 여과하지 않고 보관하든 차이가 없었다.   재사용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한 번 튀김에 사용한 기름을 다시 쓰면 튀김의 풍미를 더 깊게 해준다. 재료의 풍미 물질이 기름 속으로 녹아들기 때문이다. 팬에서 식재료를 가열하면 당과 아미노산이 반응하여 구운 음식 특유의 풍미와 갈색을 내는 물질이 생성된다. 이른바 마이야르 반응이다. 한 번 사용한 기름에는 마이야르 반응의 스타터가 되는 물질이 많이 남아있어서 갈변 반응이 더 쉽게 진행된다.   고기를 구울 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고기를 구운 팬에 기름을 그대로 남겨둔 채로 기름을 조금 더 붓고 겉면을 센 불로 익히면 더 빠르게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한다. 같은 팬에 두 번째로 구운 스테이크가 맛이 더 좋은 이유이다. 요리사들이 새 튀김 기름에 재사용 튀김 기름을 섞어 쓰는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가정에서 튀김을 만들면 식당보다 더 깨끗한 기름을 쓰게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집에서 재사용하는 튀김 기름은 식당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변질하기 쉽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전용 튀김기는 기름을 바닥보다 위쪽에서 가열하므로 가장 아래쪽의 기름은 비교적 낮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작은 파편이 떨어져 나오더라도 아래로 가라앉을 뿐 타지 않는 구조다. 반대로 집에서 냄비나 팬을 가열할 때는 부스러기가 밑에서 타면서 기름을 산화시키기 쉽다.   튀김은 집에서 가장 위험한 조리 방식이기도 하다. 튀김 기름에 불이 붙으면 화재의 위험이 있다. 튀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유증기를 들이마시는 것도 건강에 그다지 유익하지 않다. 전을 부치든, 튀김을 만들든 기름을 사용하여 조리할 때는 후드를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게 건강에 좋다.   기름이 산패하여 쩐내가 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재사용은 가능하다. 하지만 어떻게든 남은 기름을 다 먹다 보면 섭취 칼로리가 과잉이 될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튀김은 밖에서 사 먹는 게 나은 음식이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튀김 재사용 튀김 온도 튀김옷 전용 튀김기

2024-02-19

[음식과 약] 나이 들수록 상처가 안 낫는 이유

나이 들수록 상처 치유가 느려진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나이든 군인은 상처 회복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기록된 사실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노인의 피부는 더 얇고 탄력을 잃으며 손상되기 쉽다. 나이 들면서 상처 치유에 필요한 케라틴을 생산하는 피부 세포도 힘이 떨어진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도 상처 치유를 방해한다. 혈당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혈액 순환이 힘들어지고 상처 복구도 더뎌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단백질과 같은 필수 영양소 섭취가 부족해도 문제가 생긴다. 비타민 C, 비타민 D, 아연과 같은 비타민과 미네랄의 결핍도 상처 치유가 지연되는 원인 중 하나다. 나이 들수록 사용하는 약의 가짓수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약 복용도 손상 부위 회복을 늦출 수 있다. 상처 치유의 첫 단계는 염증이다. 염증 단계는 상처가 생긴 직후부터 3~4일간 지속한다. 스테로이드·소염진통제와 같이 염증 억제 약을 먹으면 상처 회복이 더뎌질 수 있는 이유이다. 흔히 혈액을 묽게 하는 약으로 불리는 항응고제도 상처 치유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약 때문에 상처가 잘 안 낫는 걸 의심하여 의사와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약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된다.   면역 체계가 전보다 늦게 작동하는 것도 치유가 지연되는 원인이다. 상처 부위가 새로운 피부층으로 덮이려면 주변의 피부 세포가 이주해야 한다. 이렇게 피부 세포가 이동하려면 근처 면역 세포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록펠러대 연구에 따르면 노화로 인해 피부 세포와 면역 세포 간 소통이 제대로 안 될 수 있다. 생후 2개월 된 생쥐(사람으로 치면 20세)와 24개월 된 생쥐(사람 나이 70세)를 비교한 결과, 케라틴 세포가 상처 부위로 이동하는 시간이 나이든 생쥐의 경우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났다. 케라틴 세포가 이주하려면 주변 면역 세포에게 도움을 청하는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나이든 생쥐의 케라틴 세포는 그런 신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피부 세포이든 나이 들수록 소통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상처가 빨리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비누와 수돗물로 가볍게 상처 부위를 씻어내 주는 게 좋다. 소독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정상세포도 손상시킬 수 있다. 다음 단계로 습윤드레싱을 사용해주면 된다. 과거에는 습기가 상처를 감염시킬까 우려하여 딱지가 생길 때까지 건조하게 두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처 치유에는 촉촉한 환경이 낫다. 주변의 피부 세포가 이동하여 해당 부위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는 가벼운 상처에 국한된 설명이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나이 상처 상처 치유 상처 부위 상처 회복

2023-12-31

[음식과 약] 부작용이 희소식이 될 때

약의 부작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부작용이 약효가 있다는 표시가 되기도 한다. 요즘 탈모치료제로 많이 사용되는 미녹시딜이란 약이 있다. 미녹시딜 사용 초기에 역설적으로 머리카락이 더 빠지기도 한다. 모발의 휴지기를 단축하기 때문이다. 탈모 치료를 원하는 사람에게 이는 희소식이다. 모발의 성장기도 그만큼 빨리 시작되고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탈모 치료를 위해 미녹시딜을 먹거나 바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에 머리가 조금 더 빠진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불행히도 미녹시딜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녹시딜은 본래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지만 모낭에서 황산전달효소에 의해 활성화되어 약효를 낸다. 모낭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을 확장해 혈액 흐름을 좋게 하고 모낭이 더 커지도록 한다. 모낭 주변에 혈관이 새로 생겨나도록 해주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모낭세포 속의 황산전달효소 수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약물을 활성형으로 바꿔주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미녹시딜 사용 처음 2~3주 동안 탈모가 증가하는 건 그래서 반가운 부작용이다. 모낭세포 속 황산전달효소가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스피린을 비롯한 소염진통제는 황산전달효소의 작동을 방해하여 미녹시딜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탈모 완화를 위해 미녹시딜을 사용 중인 사람이라면 기억해둬야 할 상호작용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에 가벼운 몸살 증상도 약효가 나고 있다는 표시이다. 열·오한·두통·피로감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인체의 면역반응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막 시작되었던 2020년 12월 미국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이다. 백신 2차 접종 뒤에 피로·불편감·두통 같은 증상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항체 수준이 거의 두 배였다. 피부 체온이 1°C 높으면 2차 접종 6개월 뒤에 항체 수치가 거의 세 배로 높게 나타났다.   이전에 백신을 맞고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면역 반응이 덜 나타나서 효과가 떨어질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같은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다른 연구 결과에서는 백신을 맞은 뒤 아스피린·이부프로펜 같은 소염진통제를 복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항체가 더 많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을 맞은 뒤에 소염진통제를 먹었다는 건 접종 뒤에 가벼운 몸살 증상이 있었다는 거고 그만큼 면역반응이 활발했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부작용이라고 너무 미워만 할 일은 아니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부작용 희소식 미녹시딜 사용 황산전달효소 수치 요즘 탈모치료제

2023-10-17

[음식과 약] 약 먹고 누우면 약효 빨라질까

약을 먹고 나서 오른쪽으로 누우면 흡수가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알약을 삼키고 나서 오른쪽으로 누우면 상체를 세우고 앉을 때보다 13분 더 빠르게 흡수된다는 것이다. 2022년 8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이다. 연구진의 설명에 따르면 왼쪽으로 눕는 게 최악인데 이 경우 흡수가 매우 느려져서 100분까지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누울 때 10분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무려 10배가 더 걸리는 셈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한 게 아니라 위장을 본뜬 시뮬레이션 모델을 이용해 계산한 결과이다.   자세에 따라 위에서 장으로 내용물이 배출되는 속도가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1980년 영국 연구에서 실험으로 이를 증명했다. 물을 마시고 누울 때 왼쪽으로 누우면 장으로 더 천천히 내려가고 오른쪽으로 누우면 더 빨리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바로 앉을 때보다 위 배출 속도가 조금 더 빠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위의 구조와 중력 때문이다.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보통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러니 오른쪽으로 누우면 위 속 액체가 십이지장으로 쏟아져 들어가기 더 쉽다. 약물의 체내 흡수는 주로 십이지장에서 일어나므로 약이 장으로 더 빠르게 들어올수록 흡수도 빨라진다.   하지만 이렇게 되는 것은 소금물처럼 열량이 없는 액체를 마실 때로 한정된다. 설탕물처럼 열량을 지닌 액체를 마시면 장에서 이를 감지하여 위 배출 속도를 조절한다. 고형의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로 자세에 따른 영향이 거의 없다. 몸의 입장에서 보면 자세와 관계없이 음식 속 영양성분을 제대로 흡수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이므로 배출 속도도 영양구성에 맞춰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니 식후에 약을 복용할 때 흡수를 빠르게 하겠다고 오른쪽으로 누울 필요는 없다.   건강상 이유로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약을 먹고 나서 왼쪽보다 오른쪽으로 누워있는 게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약효를 빨리 보려고 오른쪽으로 누울 필요는 없다. 알약을 삼키고 나서는 똑바로 서 있거나 앉아있는 게 더 안전하다. 약을 먹고 바로 누우면 위 내용물이 식도 쪽으로 역류하여 알약이 식도점막을 자극하거나 손상시킬 위험이 커진다. 약 복용 뒤에 물을 충분히 마시지 않고 바로 누우면 알약이 중간에 멈추어 식도점막에 달라붙어 염증이나 식도천공을 일으킬 수 있다.   위장 구조상 먹고 나서 누울 때 왼쪽으로 누우면 역류 증상이 적다는 주장도 있다. 반대로 오른쪽으로 누울 때 위 내용물이 빠르게 비워져서 역류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론도 있다. 어느 쪽으로 눕느냐보다 먹고 나서 2~3시간은 눕지 않는 게 더 확실한 예방책이다. 약이든 음식이든 먹은 직후에는 눕지 말자.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약효 배출 속도 체내 흡수 위장 구조상

2023-09-28

[음식과 약] 두통, 그 흔하고도 대단한 고통

미국의 세 번째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두통으로 크게 고생했다. 두통이 자주 생기는 편은 아니었고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다. 하지만 두통이 왔다 하면 그 강도가 매우 심했다. 며칠 동안 두통으로 고생하거나 심지어 여러 주에 걸쳐 두통 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제퍼슨의 두통이 어떤 종류였는가는 분명치 않다. 일부 전문가는 편두통이었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두통이 오래간 점을 들어 긴장성 두통이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퍼슨이 두통 증상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긴 것은 아니어서 확실한 답을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제퍼슨의 시대와 우리 시대가 다른 점은 두통에 대한 사람들의 동정심의 정도이다. 200년 전만 해도 두통이라고 하면 그리 심각하진 않지만 통증 면에서는 정말 괴롭다고 여기고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가벼운 문제로 생각하거나 심지어 꾀병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약을 먹으면 쉽게 낫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두통이 매우 흔한 질환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전체 인구의 90% 이상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두통을 겪는다. 반면에 평생 두통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다. 2021년 덴마크 연구에 따르면 평생 두통을 경험한 적 없다는 사람이 4%에 이른다. 이들은 어떻게 두통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두통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여 통증에 둔감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18~70세인 99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이 중 47명은 두통 경험한 적 없는 남성, 나머지 52명은 두통을 경험한 적이 있는 남성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이 통증에 얼마나 민감한지 보려고 얼음물에 손 담그고 통증을 얼마나 느끼는지 조사했다. 실험 결과, 통증을 느끼는 정도는 두통 없는 사람이나 두통 유경험자나 비슷했다. 두통이 통증에 더 예민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모든 두통이 진통제로 완화되는 것도 아니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한 불편감과 통증을 유발하거나 만성적으로 이어져 괴로움을 주는 두통도 있다. 사람에 따라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심한 두통, 시각장애나 심한 피로감을 동반하는 두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병·의원을 방문하여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 한 달에 보름 이상 두통약을 먹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두통약 과복용으로 인한 두통으로 고생할 수 있다. 약을 너무 자주 써서 오히려 두통이 더 자주 생기는 것이다. 약으로 매번 통증을 가라앉히다 보니 통증에 더 민감해지고 약을 안 쓰는 날 두통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과학자들의 추측이다. 두통이라고 너무 가볍게 여기거나 무턱대고 약을 먹는 건 피해야 한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두통 고통 두통 유경험자 두통약 과복용 두통 시각장애

2023-08-31

[음식과 약] 오메가3 논란이 알려주는 사실

오메가3 보충제가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오메가3 보충제가 만성 관상동맥질환 환자에게 별다른 유익을 보인다는 근거가 없어 추천하지 않는다는 권고안이 나온 것이다. 미국심장협회·미국심장학회를 비롯한 6개 단체가 지난달 20일 함께 내놓은 가이드라인에서 이처럼 명시했다. 보통 오메가3라고 하면 DHA와 EPA가 함께 들어있는 제품이 많지만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나 그로 인한 사망 위험을 감소시킨 것은 EPA만 정제한 약품 하나뿐이었다. 이 약품은 미국에서 처방약이다.   그러나 오메가3에 대한 이렇게 긍정적인 연구결과조차도 실험 설계상 오류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메가3를 준 쪽 참가자가 심혈관질환 위험이 줄어든 게 아니라 위약(플라세보)으로 미네랄오일을 준 쪽 실험 참가자가 심혈관질환 위험이 늘어나는 바람에 마치 약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잘못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가짜약으로 준 미네랄 오일이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의 흡수를 줄여서 약효를 떨어뜨려서 플라세보 그룹의 심혈관질환 위험이 정상보다 늘어났을 거라는 게 과학자들의 추측이다.   오메가3 보충제만 이렇게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비타민C, 비타민D, 비타민E, 베타카로틴, 칼슘도 유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춰준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대개 이런 연구의 출발 지점은 음식이다. 그리고 음식 관련 연구는 대부분 관찰연구라는 한계가 있다. 오메가3 보충제가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출 거란 생각은 등 푸른 생선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심혈관질환 위험이 낮아 보인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거란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관찰로는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생선을 많이 먹는다는 사람과 생선을 적게 먹는다는 사람 간에 차이점이 과연 생선 섭취량 하나뿐일까 아니면 다른 점이 숨어있는 것일까. 과학자들이 교란 요인이라고 불리는 이런 변수를 어떻게든 줄이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이런 변수를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과 관계를 알아내려면 우선 생선을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어떤 영양성분 섭취에서 차이가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 성분이 오메가3 지방산이라면 한쪽에는 오메가3 보충제를 주고 다른 한쪽에는 가짜약을 주는 식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해봐야 비로소 인과관계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음식 속의 특정 성분을 추출하여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해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올 때가 흔하다. 혹여 효과가 있더라도 그리 강력하진 않으니 늘 논란이 생긴다. 몸에 좋다는 특정 음식이나 단일 영양성분보다 전체 식단이 중요하다는 조언에 귀를 기울이자.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오메가 논란 심혈관질환 위험 생선 섭취량 영양성분 섭취

2023-08-17

[음식과 약] 백세인 따라하기

지난달 17일 미국의 초백세인 루이스 레비가 112세로 사망했다. 레비는 장수와 유전의 관계에 대한 연구의 대상이었던 700명이 넘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여러 해외 언론에서 그녀의 사망 소식을 다뤘다. 백세인은 점점 늘고 있다. 1990년 전 세계 9만5000명에서 2015년에는 45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110세를 넘겨 사는 초백세인은 매우 드물다.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생존하는 초백세인은 500명을 넘지 않는다.   초백세인이 그저 수치상으로만 장수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질병 없이 오래 산다. 112세까지 살면서도 레비는 심장질환·당뇨병·알츠하이머병을 앓지 않았다. 그녀의 장수 비결은 뭐였을까. 레비 본인은 긍정적 태도, 저콜레스테롤 식단, 하루 한 잔 레드와인을 마신 게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장수인의 유전적 특성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과학자 니르 바질라이는 유전자에 답이 있다고 설명한다. 레비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일원이었는데 이들은 유전 변이 덕분에 노화가 늦춰지고 심장병·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위험도 낮아지는 유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 중 60%가 흡연자, 50%가 과체중 또는 비만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절반에 못 미치는데 질환 위험은 낮게 나타나는 건 유전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흡연하든 운동을 안 하든 과체중이든 괜찮다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장수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환경이라도 바꿔줘야 건강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특히 소식하는 게 중요하다. 백세인은 따로 소식하지 않아도 칼로리 제한 식단을 하는 사람과 비슷한 몸 상태를 유지한다. 소식이나 간헐적 단식으로 섭취 열량을 줄여주면 혈중 인슐린 수치가 낮아지고 인슐린 민감도가 향상되는데 장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그런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부럽다. 하지만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적게 먹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뿐이다. 다만 이렇게 적게 먹을 때는 영양실조가 되지 않도록 영양소 간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활동량을 늘리는 건 좋지만 낙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루이스 레비가 사망한 것도 엉덩이관절 골절 때문이었다. 수술과 재활 뒤에 감염이 발생하며 쇠약해진 것이다. 고관절 골절로 누워있는 동안 근육은 줄고 대사기능이 떨어지며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쉽다. 회복 뒤에도 다시 골절을 겪게 될 위험이 크다.   과학자들은 백세인, 초백세인의 유전자를 흉내 내어 건강 수명을 늘려주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약 없이도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자.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백세 장수 유전자 사망 소식 고관절 골절로

2023-08-02

[음식과 약] 여름 야식을 피해야 하는 이유

야식이 끌리는 계절이다. 하지만 여름 야식은 특히 피하는 게 좋다. 피부에 해롭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 텍사스대에서 동물 실험을 통해 밝혀낸 사실이다. 연구팀은 야행성인 생쥐에게 부자연스러운 식사시간인 낮에 먹이를 주었을 때와 일주기 리듬에 맞게 밤에 먹이를 줄 때 피부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낮에 먹이를 준 쥐들은 자외선에 노출시 피부가 더 많이 손상됐다. 피부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효소의 활성을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피부 세포의 유전자 중 10%가 식사 패턴에 따라 발현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사람에게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동물에게는 일주기 리듬이 존재하므로 언제 먹느냐는 중요하다. 약 24시간을 주기로 행동과 생리 현상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생체시계가 몸 전체를 두고서만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체 세포 하나하나에 생체시계가 내장되어 있다는 게 최근 과학자들의 견해이다. 텍사스대 연구 결과를 보면 생쥐의 피부세포에도 생체시계가 들어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밤에 먹어야 하는 동물을 낮에 먹도록 하면 피부세포의 생체시계의 리듬이 깨지고 피부가 자외선(UVB)에 더 취약해진다. 그렇다면 주로 낮에 활동하는 사람의 경우는 야식을 할 때 피부가 햇볕에 더 손상되기 쉬울 거라고 유추할 수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아직 단언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야식은 식도에도 해롭다. 위에 음식물이 차 있는 상태로 누우면 위 내부의 압력이 증가한다. 음식과 위산이 뒤섞인 내용물이 식도 쪽으로 역류할 수 있다. 위 점막은 위산에 잘 버텨내지만 식도 점막은 그렇지 못하다. 밤에 먹고 배부른 채로 자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는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식도 점막이 손상되어 위식도 역류질환 위험이 커진다. 흡연·음주는 증상을 악화시킨다. 술 마시고 야식을 즐긴 다음날 명치가 쿡쿡 찌르듯 아픈 이유는 대개 이런 위식도 역류와 관련된다. 먹고 나면 최소한 세 시간은 기다렸다 자야 한다. 일찍 자려면 취침 전 3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좋다.   야식은 체중 조절에도 해롭다. 2022년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저녁 식사 시간을 네 시간 늦출 때 참가자의 에너지 소비와 식욕, 지방 저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았다. 밤늦게 식사할 경우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 수치가 달라졌다. 야식하고 나면 포만감 호르몬인 렙틴 수치는 감소하고 에너지 대사는 느려졌으며 지방 분해는 줄고 저장은 늘어났다. 남들과 똑같이 운동하고 똑같은 양을 먹어도 야식을 계속하면 살이 찌기 쉽다는 이야기이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여름 야식 여름 야식 위식도 역류질환 피부 세포

2023-07-20

[음식과 약] 아스파탐이 발암물질이라고?

아스파탐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지난달 29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아스파탐을 발암물질 분류에 넣기로 했다는 소식이 로이터통신 단독 뉴스로 나왔다. 아스파탐을 기존 발암물질 분류 목록에 추가한 것이다. 여기에 오른 물질의 수는 1군부터 3군까지 무려 1100개가 넘는다.   국제암연구소의 분류는 많은 혼란을 유발한다. 이 목록에서 발암물질 또는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분류하는 기준은 과학적 근거가 얼마나 확실하냐에 따른다. 발암성이 어느 정도로 심한지 섭취량이 얼마부터 위험하다는 이야기인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가령 매우 뜨거운 음료와 살충제 성분 DDT가 모두 2A군이다. DDT와 뜨거운 음료가 동일한 정도로 위험하다는 뜻인가. 전혀 아니다. 과학자들의 연구가 비슷한 정도로 진행되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2015년 10월 흡연, 술과 같은 1군에 들어간 가공육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가공육 과잉 섭취로 인한 암 사망자 수보다 흡연으로 인한 암 사망자 수가 30배, 음주로 인한 암 사망자 수는 20배가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아스파탐이 어느 군으로 분류될지는 아직 모른다. 오는 14일 발표를 기다려봐야 한다. 일부 언론의 예상대로 2B군에 포함된다면 고사리, 알로에 베라 추출물, 김치, 피클과 같은 절임채소와 같은 군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미 논란이 뜨겁다. 아스파탐 섭취와 암 위험에 대해 프랑스 성인 10만 명을 대상으로 8년 가까이 추적 연구한 결과 암 위험이 조금 증가했다.   이런 식의 관찰 연구로는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연구에 참여한 사람은 애초에 일반 국민보다 아스파탐 섭취량이 적은 사람들이었다. 프랑스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대체 감미료 자체를 적게 먹고 있는 사람을 다시 둘로 나눠 봤더니 암 위험과 연관성이 있더라는 이야기다. 아스파탐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그런 차이가 나타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19년 영국의학협회지에 실린 연구에서 35건의 관찰 연구와 21건의 임상시험 연구를 분석했다. 결론은 대체 감미료가 체중 감량에 주는 유익도 미미하긴 하지만 특별히 암 위험을 높이거나 해롭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가 이 점에서는 일치한다. 아스파탐과 같은 대체 감미료가 당뇨환자의 혈당치를 개선하거나 과체중, 비만에 큰 도움을 주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해롭지도 않다.   세계보건기구산하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에 따르면 체중 60㎏ 성인이 하루 제로 소다 12~36캔을 매일 같이 마시지 않는 한 위험하지 않다. 현대인의 식탁에서 더 중요한 정보는 질보다 양이다. 과유불급의 원칙을 잊지 말자.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아스파탐 발암물질 아스파탐 섭취량 발암물질 분류 아스파탐 때문

2023-07-06

[음식과 약] 커피가 암을 유발한다고?

유튜브 세계는 희한하다. 3~4년 전에 논란이었던 문제가 마치 요즘 일인 양 다시 떠오른다. 커피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아크릴아미드라는 물질이 생겨난다.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음식을 고온으로 가열할 때 생겨나는 물질이다. 커피에서 아크릴아미드를 제거하는 방법은 없으며 커피를 마시면 아크릴아미드를 섭취하게 된다.   하지만 매우 적은 양이며 이 물질이 암 유발 위험을 높이는가도 의문스럽다. 동물실험에서 암 유발 위험을 높이는 결과가 나오긴 했으나 사람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사람이 도저히 섭취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실험동물에게 먹였을 때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크릴아미드는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식품을 고온에서 조리할 때 생겨난다. 아미노산의 하나인 아스파라긴과 당이 반응하여 생성되는 물질이다. 프렌치프라이에 대표적으로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아크릴아미드가 암 위험을 높일 정도로 감자튀김을 많이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일 감자튀김 75㎏을 2년 동안 먹어야 동물실험과 비슷한 조건이 된다.   집에서 요리할 때도 아크릴아미드가 생겨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전분질 음식을 볶고 굽고 튀기면 아크릴아미드가 만들어진다. 빵, 과자, 차, 기타 농산가공품에도 들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섭취하는 아크릴아미드의 양은 매우 적은 편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바탕으로 식약처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하루 체중 1㎏당 0.1㎍ 수준으로 다른 나라(0.16∼2㎍/㎏)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최근 연구 결과는 암 유발 위험을 주장하며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일부의 주장과는 정반대 쪽에 서 있다. 하루 2~3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건강하다는 쪽이 다수이다. 2020년 리뷰 연구에서 다수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커피는 간암, 전립선암, 파킨슨병, 심장병, 2형 당뇨병, 우울증 위험 감소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말기 대장암 환자 117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하루 한 잔 커피를 마신 사람이 안 마신 사람보다 생존율이 11% 높아졌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암 예방이나 치료를 위해 커피를 마시라는 말은 아니다. 식품 연구의 한계상 커피를 마시는 것과 암 위험 감소에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커피를 마신다고 암 위험이 높아질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먹는 어떤 음식에든 수천 종의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커피 속에도 카페인뿐만 아니라 폴리페놀과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다. 특정 음식이나 성분을 극단적으로 악마화하기보다 골고루 적당히 즐기는 게 건강에도 최선이다. 그런 정답은 변하지 않는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커피 유발 디카페인 커피 한계상 커피 결과 커피

2023-06-22

[음식과 약] 어디에서 봤을까

무엇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출처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보거나 들은 정보를 기억하는 쪽으로는 잘 발달해있지만 그런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를 기억하는 면에서는 매우 취약하다. 출처기억은 늦게 발달하고 노화에 취약하다. 인간 고유의 정신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에서 이런 기능을 담당하는데 뇌에서도 이 부위는 성숙이 느린 편이다.   전전두엽 피질이 손상된 환자는 출처기억력이 저조해져서 자주 곤란을 겪는다. 1997년 한 실험에서 참가자 절반에게는 남성이 문장을 읽어주도록 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여성이 동일한 문장을 읽어주도록 실험하면 이들 환자는 문장의 내용은 잘 기억하지만 읽어준 사람의 성별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드러났으니, 건강한 사람도 출처를 기억하기 어려워하는 건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이야기는 잘 기억하지만 누가 그 얘기를 해줬는지는 기억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나도 출처기억력 때문에 애먹을 때가 많다. 지난주 드라마를 보다가 마음에 들었던 대사가 몇 화에 나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무려 여섯 편을 다시 보고 나서야 마침내 그 대사가 나오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상적 장면을 보자마자 캡처하거나 메모해뒀더라면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책을 읽든 영화나 드라마를 보든 간에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나오면 그때그때 기록을 남겨둬야 출처를 찾지 못해 헤매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출처기억력을 향상하는 약은 아직 없다. 메모만이 답이다.   저조한 출처기억력의 문제는 더 심각한 결과로도 이어진다.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팩트와 다르게 그려진 장면을 보게 될 때 그렇다. 우리의 뇌는 출처 없이 정보의 내용만을 기억하므로 사실을 왜곡한 극 중 이야기를 마치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40년 전 스파이영화에 나온 장면 때문에 전전두엽이 손상된 환자 한 명이 자신의 집 근처 건물이 사악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믿었다는 사례가 보고된 적이 있다. 영화 속 장면이라는 정보의 출처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그런 망상에 빠진 것이다. 건강한 사람도 이런 왜곡된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험에서 팩트와 다른 내용이 있다는 사전 설명을 하고 영화를 보도록 해도 대학생들은 팩트보다 영화 속 허구를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출처보다 내용을 기억하는 게 생존에 더 중요했을 가능성이 있다. 동굴 근처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정보가 그 얘기를 누가 해줬는가보다 의미 있었단 얘기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출처기억과 팩트 체크가 필수적이다. 내가 아는 게 사실이 맞는지 항상 확인해보자.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출처기억력 때문 전전두엽 피질 인상적 장면

2023-06-08

[음식과 약] 두 가지 다른 냄새

사람이 맡는 냄새에는 두 가지가 있다. 들숨의 향기와 날숨의 향기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코로 들이마실 때 나는 냄새를 정비측 후각이라고 부른다. 코를 킁킁거리며 맡게 되는 냄새다. 반대로 음식을 한입 넣고 씹을 때는 목구멍 뒤에서 음식의 향기 물질이 날숨과 함께 비강으로 들어간다. 과학저술가 밥 홈즈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목구멍은 이러한 음식 냄새를 콧속 빈 공간으로 밀어 넣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코로 들어온 공기가 목구멍에서 커튼 같은 차단막을 만들어서 입속의 향기 물질이 폐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다.   그 결과 음식을 입에 넣고 씹을 때 우리는 오롯이 날숨의 냄새에 집중할 수 있다. 개의 후각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날숨의 냄새에 관한 한 사람이 더 빼어난 후각을 자랑한다. 긴 코를 가진 개는 정비측 후각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사람은 후비측 후각이 잘 발달해있다. 후비측 후각은 인간만 가진 독보적 능력이다.   이러한 인체구조의 특징을 알고 나면 우리가 왜 냄새가 고약한 음식을 사랑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잘 삭힌 홍어로 끓인 홍어탕은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나지만 막상 입에 넣으면 진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난다. 중국 음식에 정통한 미식가 YTN 김진방 기자는 이를 ‘겉취속깔’(겉으로는 악취가 나지만 먹어보면 깔끔한 맛)이라고 묘사한다.   비슷한 예로 두리안 냄새는 코로 맡으면 너무도 고약하지만 입에 넣으면 그 맛이 훌륭하다. 달콤하며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맛보면 왜 두리안을 왕의 과일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옷에 냄새가 밸까 걱정하면서도 청국장찌개에 끌리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반대로 갓 내린 커피 향기처럼 코로 맡을 때는 훌륭한 냄새가 입속에서는 별맛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와 넣기 전에 느껴지는 냄새가 다르다는 현상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저명한 음식 심리학자 폴 로진이다. 그는 벨기에산 림버거 치즈의 고약한 냄새가 막상 입에 치즈 조각을 넣으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1980년대 로진이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록한 뒤에도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입안에서는 음식의 냄새뿐만 아니라 촉감과 맛이 함께 느껴지므로 어디까지가 후각의 영역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튜브를 삽입하고 정비측 후각과 후비측 후각을 구별하여 냄새 맡게 하는 정교한 실험을 통해서야 마침내 로진의 가설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냄새가 고약하다는 이유로 치즈나 홍어 같은 음식을 피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그런 음식을 즐기는 사람을 멸시하거나 흉보기도 한다. 하지만 날숨으로 느끼는 후비측 후각의 냄새야말로 맛의 진국이다. 잊지 말자. 진짜 맛이란 편견을 버리고 음식을 입에 넣어야 알 수 있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냄새 음식 냄새 두리안 냄새 음식 심리학자

2023-05-25

[음식과 약] 물 마신다고 술이 깰까

술 마신 뒤에 물을 마셔도 소용없다. 물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술이 더 빨리 깨지 않는다. 숙취 증상을 조금 줄이는 효과는 있다. 알코올은 이뇨제처럼 작용해서 탈수 증상을 일으킨다. 술을 마시고 나면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 이유다. 술 마신 다음 날 얼굴이 땅기는 느낌이 드는 것도 탈수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물은 인체가 섭취한 알코올을 제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알코올은 간에서 대사된다. 물은 간이 알코올을 해독하는 일을 도와줄 수 없다. 약 먹을 때 물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몸에서 약이 더 빨리 빠져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물을 마시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약의 농도가 희석될 수는 있다. 일부 항생제, 항암제를 복용할 때 하루 4~6잔 이상 물을 마시라고 권고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소변 중에 약의 농도를 묽게 해서 약이 결정을 만드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운동선수들이 약물 남용 뒤에 이뇨제를 복용하거나 물을 많이 마셔서 도핑 테스트를 피하려고 시도하는 사례도 있었다. 요즘엔 분석 기술이 좋아져서 그렇게 해도 검사에 다 걸린다. 게다가 알코올처럼 간에서 대사되는 약물은 물을 마셔도 체내에서 제거되는 데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술을 마시는 중간에 물을 마시면 덜 취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물이나 비알콜 음료를 마시면 술 마시는 양이 조금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술을 마시려는 욕구가 줄어드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도 있다. 2017년 독일 연구팀은 23명의 알코올 의존증 남성 환자를 대상으로 한쪽에는 미네랄워터 1000㎖를 마시도록 하고 다른 쪽은 물을 마시지 않도록 하여 호르몬 수치를 비교했다. 그 결과, 물을 마신 참가자들은 음주 욕구와 관련한 호르몬 수치가 줄어들고 실제로 음주에 대한 갈망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을 마시면서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게 조금 적게 마실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술 한 잔을 마시면 물 한 잔을 마시는 전략은 술을 적게 마시는 방법으로는 나쁘지 않다.   술 마신 뒤에 빨리 깨는 방법은 없다. 커피나 카페인 음료를 마시면 술이 깨는 거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카페인은 알코올 자체의 해독에 전혀 효과가 없다. 2020년 캐나다에서 호흡을 항진시키면 알코올이 더 빠르게 제거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소규모 연구로 알아내긴 했다. 하지만 이것도 과호흡을 유도하는 기기를 사용했을 때 이야기다. 일상에서 음주 뒤에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니 선택은 단 하나다. 간이 알코올을 전부 제거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몸은 정직하며 융통성이 없다. 뒷일이 걱정된다면 술을 안 마시거나 적게 마시는 수밖에 없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알코올 의존증 간이 알코올 알코올 자체

2023-05-11

[음식과 약] 봄 미나리 향기, 그 맑고 싱그러운

미나리에는 봄의 향기가 가득하다. 공심채처럼 속이 빈 줄기를 살짝 데쳐 입에 넣고 씹으면 아삭하면서 싱그럽다. 식품공학자 최낙언은 미나리의 맑고 시원한 향기가 피톤치드를 구성하는 물질과 닮았다고 설명한다. 숲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 마음을 정화하는 듯 울려 퍼지는 바로 상쾌한 향기다.   미나리의 이런 강한 향미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많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싫어하기도 한다. 냄새 감각은 유전적 차이가 크다. 진화생물학 박사이며 저술가인 밥 홈즈는 사람의 냄새 수용체가 약 400개이지만 이들 중 30%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미나리를 맛보고 봄의 향기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휘발유 냄새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고수에서 풀 향기를 느끼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비누와 벌레를 연상하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미나리가 사람을 위해 이런 향기물질을 만드는 건 아니다. 미나리에게 향기물질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저항 수단이다. 그래서 산이나 들판에서 자란 돌미나리에는 편안한 환경에서 자란 미나리보다 향이 더 강하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2년 전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아서 화제가 됐던 영화 ‘미나리’에 나온 대사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로 인상 깊은 한마디였다. 영화에서 그려낸 것처럼 낯선 이국에서 정착하려는 한국인 가족의 삶에는 고난이 가득했다. 본래 고국을 떠난 이민자의 삶이란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든 뿌리 내리려고 애쓰는 미나리와 비슷하다. 겉으로 보기에 미나리는 그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로만 보인다. 하지만 미나리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변의 위협과 맞서 싸우기 위해 향기 물질을 만들어내고 환경과 씨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미국인의 눈에 먹어 본 적 없는 영화 속 미나리는 생소한 식재료이다. 몰라서 그럴 뿐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당근, 셀러리, 딜, 쿠민, 회향(펜넬)이 전부 미나릿과 식물로 한 가족이다. 인간은 국적을 따지지만 식재료가 되는 식물에 그런 경계란 있을 수 없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지역 식문화마다 다르게 구분해놓았다고 해도 결국 음식이란 인간이 보편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은 게 당연하다.   영화 ‘미나리’ 속 이민 가족의 삶을 보면서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것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그런 보편성 때문이다. 고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모두 미나리처럼 고난 속에서도 뿌리내리고 삶을 살아간다. 그 가운데 우리가 만들어내는 삶의 냄새가 봄철 미나리처럼 싱그럽고 상쾌한 향기로 느껴지길 바랄 뿐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미나리 향기 미나리 향기 미나리가 사람 봄철 미나리

2023-04-27

[음식과 약] 약과 자외선 차단

맑은 봄날은 풍경을 바라만 봐도 좋다. 하지만 약을 사용 중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햇볕에 예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먹는 약이든 바르는 약이든 광과민성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항생제를 먹었는데 입에서 쓴맛이 느껴질 때가 있듯이 삼켜서 흡수된 약은 몸 전체에 퍼지므로 피부에도 일부 전달된다. 이렇게 피부로 간 약성분이 햇빛에 노출되면 광과민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약을 사용 중인 사람은 자외선 지수가 높은 날 지나친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게 좋다. 특히 항생제, 이뇨제, 콜레스테롤 저하약, 소염진통제, 피부과약을 사용 중에는 가급적 햇빛 노출을 피해야 한다.   햇빛이 강렬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가급적 직사광선 노출을 피하고, 야외 활동 중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늘에서 중간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 양산, 긴 팔과 긴 바지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옷이 젖으면 자외선이 거의 차단되지 않는다. 위의 방법으로도 모든 자외선이 차단되지는 않는다. 평소에도 바깥에 나갈 때는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어야 하지만 약 사용 중에는 더 주의해서 꼼꼼히 바르는 게 좋다.   어떤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는 게 좋을까. 자외선에는 UVA·UVB 두 종류가 있는데, 피부 노화를 일으키는 것은 주로 UVA, 햇빛 화상을 일으키는 것이 UVB이다. 약으로 인한 광과민성 반응은 이 둘에 의해 모두 나타날 수 있다. UVA는 약으로 인한 광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다. 약 사용 중에는 UVB로 인한 햇빛 화상 위험도 커진다. 그러니 둘 모두를 막아줄 수 있는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때는 충분한 양을 자주 발라주는 게 중요하다. 조금 지나치다 싶게 바르는 게 아껴 바르는 것보다 낫다. 물리적으로 빛을 반사하는 방식의 자외선 차단제는 바르면 바로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자외선을 흡수하여 열에너지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화학적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에 보호층을 형성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외출 15~30분 전에 미리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게 효과적이다. 2시간 간격으로 다시 발라주는 게 원칙이지만 땀을 많이 흘려서 지워졌을 때는 그보다 더 자주 발라야 한다.   모든 약이 광과민성을 유발하진 않는다. 하지만 광과민성과 관련되는 약이 수백 가지가 넘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에 유통되는 자외선 차단제는 안전성이 검증된 것이지만 드물게 자외선 차단제 자체로 인해 광과민성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사용 중인 약이 자외선 차단제가 필요하진 않는지 약사와 확인해보는 게 안전하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자외선 약과 자외선 차단제 약과 자외선 화학적 자외선

2023-04-19

[음식과 약] 약과 자외선 차단

맑은 봄날은 풍경을 바라만 봐도 좋다. 하지만 약을 사용 중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햇볕에 예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먹는 약이든 바르는 약이든 광과민성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항생제를 먹었는데 입에서 쓴맛이 느껴질 때가 있듯이 삼켜서 흡수된 약은 몸 전체에 퍼지므로 피부에도 일부 전달된다. 이렇게 피부로 간 약성분이 햇빛에 노출되면 광과민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약을 사용 중인 사람은 자외선 지수가 높은 날 지나친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게 좋다. 포털 사이트에 오늘 자외선 지수를 검색하면 그날그날 자외선 지수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항생제, 이뇨제, 콜레스테롤 저하약, 소염진통제, 피부과약을 사용 중에는 가급적 햇빛 노출을 피해야 한다.   햇빛이 강렬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가급적 직사광선 노출을 피하고, 야외 활동 중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늘에서 중간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 양산, 긴 팔과 긴 바지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옷이 젖으면 자외선이 거의 차단되지 않는다. 위의 방법으로도 모든 자외선이 차단되지는 않는다. 평소에도 바깥에 나갈 때는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어야 하지만 약 사용 중에는 더 주의해서 꼼꼼히 바르는 게 좋다.   어떤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는 게 좋을까. 자외선에는 UVA·UVB 두 종류가 있는데, 피부 노화를 일으키는 것은 주로 UVA, 햇빛 화상을 일으키는 것이 UVB이다. 약으로 인한 광과민성 반응은 이 둘에 의해 모두 나타날 수 있다. UVA는 약으로 인한 광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다. 약 사용 중에는 UVB로 인한 햇빛 화상 위험도 커진다. 그러니 둘 모두를 막아줄 수 있는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때는 충분한 양을 자주 발라주는 게 중요하다. 조금 지나치다 싶게 바르는 게 아껴 바르는 것보다 낫다. 물리적으로 빛을 반사하는 방식의 자외선 차단제는 바르면 바로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자외선을 흡수하여 열에너지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화학적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에 보호층을 형성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외출 15~30분 전에 미리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게 효과적이다. 2시간 간격으로 다시 발라주는 게 원칙이지만 땀을 많이 흘려서 지워졌을 때는 그보다 더 자주 발라야 한다.   모든 약이 광과민성을 유발하진 않는다. 하지만 광과민성과 관련되는 약이 수백 가지가 넘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에 유통되는 자외선 차단제는 안전성이 검증된 것이지만 드물게 자외선 차단제 자체로 인해 광과민성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사용 중인 약이 자외선 차단제가 필요하진 않는지 약사와 확인해보는 게 안전하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자외선 약과 자외선 차단제 약과 자외선 자외선 지수

2023-04-13

[음식과 약] 왜 봄이면 졸린가

봄이다. 피곤하고 졸리다. 전에는 이렇게 봄에 졸리는 현상이 영양결핍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요즘에는 사시사철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영양이 부족한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매일 각종 비타민과 영양제를 챙겨 먹는 사람도 봄이면 졸리다. 왜 그런 걸까.   추측할 수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계절성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사람은 봄철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 증상으로 낮에 피곤하고 졸릴 수 있다. 기온과 낮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란 설명도 있다.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빛의 강도가 세지면 뇌가 그걸 감지한다. 이에 따라 세로토닌·코티솔·멜라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분비량이 달라진다. 이들 물질 간의 밸런스가 달라지면 우리가 느끼는 기분과 활력에도 차이가 생긴다. 반드시 졸리기만 한 건 아니다.   사실 춘곤증이란 말은 봄의 한쪽 얼굴만 보여줄 뿐이다. 일조량이 줄어들고 해가 일찍 지는 겨울에 우울하던 사람에게 봄은 구원의 계절이다. 봄바람이 불면 마음도 함께 들뜬다. 얼굴은 빨개지고 심장 박동은 빨라지며 머릿속은 이런저런 상상으로 가득해진다. 영어권에서 ‘봄의 열병(spring fever)’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그저 봄이라 피곤한 게 아니라 봄이라 기분 좋게 더 많은 활동을 하고 나서 피곤한 것일 수도 있는 셈이다.   춘곤증도 봄의 열병도 정식 의학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실체 없는 상상은 아니라는 게 최근 과학자들의 견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는 다른 동물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므로 사람에도 나타난다고 봐야 맞다. 실제로 벨기에 연구팀이 2016년 발표한 연구결과 참가자의 작업기억은 연중 봄철에 최저 수준으로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기억이란 순간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말한다. 운전하면서 전화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작업기억이 떨어지는 봄날 운전대를 잡고 전화하는 것은 특히 더 위험하단 얘기다.   낮이 길어지고 날이 따뜻해질 때 변화에 더 빨리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햇볕을 쬐는 게 좋다. 뇌가 낮과 밤의 길이에 맞춰 인체의 리듬을 맞추는 일을 더 잘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 건강에도 유익하다. 2004년 미국 연구결과 야외활동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분과 인지능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도 주로 봄에만 해당한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야외활동을 해도 기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훨씬 적게 나타났다. 춘곤증이나 영양결핍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건 운동 부족이다. 진정한 봄의 활력을 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활동량을 늘리자. 봄은 짧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계절성 알레르기 연구결과 야외활동 생리적 변화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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